우리 소통해요

삼성의 회장 하면 누가 생각날까?

초대 삼성그룹 회장 이병철.

2대 삼성전자 회장 이건희.

그리고 언젠가 3대가 될 차기 회장 이재용.

그리고 삼성 내에서 경영자 출신으로 회장 직함을 받은 인물은 4명이 있었다.

권오현- 임관- 이수빈- 현명관.

그리고 그중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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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관은 1941년 9월 생으로 제주도 출신으로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65년 4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감사원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감사팀 내에서 수많은 사건을 해결하면서 각종 비리를 파헤치던 그는 1972년 국가에서 한 가지 제안을 받게된다.

현명관은 윗선에서 일 잘하는 감사관으로 선별되어 청와대의 사정담당 특별보좌관실로 오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현명관은 그 조건을 반려하고, 차라리 해외로 유학을 가겠다며 휴직계를 냈지만, 유학을 가려면 공무원을 퇴직하라는 압박을 받고 퇴직하여 일본으로 떠난다.



게이오기주쿠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마친 현명관은 이후 귀국하여 한 기업의 제안을 받는데…

그곳은 바로 한솔제지, 당시에는 전주제지라는 이름으로 범 삼성가에서 장녀인 이인희 사장이 있는 삼성의 계열사였다.

현명관은 그곳에서 관리부장으로 활동하다가 그 능력을 인정받고 삼성그룹 내에서 임원으로 승진하여 계열사를 옮기게 된다.



그곳은 바로 신라호텔.

1981년 현명관은 신라호텔의 이사로써 근무하게된다.

그때 그의 일생에서 큰 사건이 벌어졌으니…. 어느날 삼성 이병철회장이 신라호텔에 지시를 내린다.

이병철: 이보게 현이사!

현명관: 예, 회장님.

이병철: 만두가 맛이없어.



현명관:?????

이병철: 만두가 맛이 없다고!!!

이병철을 포함한 삼성그룹 오너 일가는 신라호텔에서 식사를 자주 했는데, 각각 까다로운 입맛을 가졌었고, 그 중에서 이병철은 신라호텔의 중식요리로 만두를 먹고는 두번 다시 입도 대지 않았다고 해서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현명관: 하아…알겠습니다. 회장님. 조치하겠습니다.

그룹 회장이 직접 자기 호텔의 요리가 맛이 없다고 한 사건이었고, 현명관은 즉시 조치를 취한다.

그는 신라호텔의 만두 정식을 준비하게 하고, 프라자 호텔과 하얏트 호텔에서도 중식 만두를 고수한다.

현명관: 신라호텔 셰프들 모두 모이세요.



신라호텔 셰프들: (웅성웅성)

현명관: 지금부터 이 만두에 있는 모든 성분을 분석합니다.

반으로 쪼개서 안에 있는 소를 빼서 야채와 고기, 기름의 비율을 모두 재보세요.



셰프들:?????????

현명관: 하세요. 빨리.

현명관은 이병철 회장의 만두가 맛이없다는 한마디로 신라호텔에서 만든 만두를 반으로 갈라 그 안에 소를 모두 집게로 찝어 야채를 덜어내고, 그것의 무게를 재고, 고기 비율은 얼마나 되는지, 만두피의 무게는 얼마나되는지 일일이 쟀다고 한다.

그 다음은 하얏트 호텔의 만두를 가지고 또 쪼개서 무게를 재고 분석하고, 프라자 호텔의 만두에서도 똑같이 분석했다.

그리고 거기에 맞는 만두소와 만두의 비율을 알아내게 하고 다시 신라호텔의 만두를 개시한다.

그 뒤로 다시 이병철 회장이 온다.

이병철: 현 이사.

현명관:(아… 이번엔 뭐지?) 무슨일이십니까 회장님?

이병철: 스시가 맛이 없어.

현명관:………조치하겠습니다.

삼성가에서 또 지적을 했던것은 스시의 맛이었다.

회를 큰 것으로 쓰느냐, 밥의 비율은 얼마나 되느냐에 대한 것을 분석하던 현명관은 결단을 내린다.



셰프들: 이사님….이번엔 또 뭐죠?

현명관: 이제부터 신라호텔에 입사하는 요리사들은 모두 일본에 있는 유명 초밥집에 가서 그 레시피를 배워 오세요. 거기에 대한 모든 지원은 제가 하겠습니다.

현명관은 신라호텔 일식 부문에서도 투자를 하여 최대 3개월까지 일본 유명 호텔의 일식집과 장인들의 가게로 유명한 스시집들에게 파견보내 스시에 대해 배우게 했다. 1980년대에 이런 요리 연수는 상당히 파격적이었고 마침내 결실을 맺는다.

이병철: 이제야 음식이 좀 맛나는구만.

현명관: 감사합니다. 회장님

그럼 요리는 이제 됐고, 우리 호텔에 대한 서비스를 개선해야 되지 않겠나?

현명관:……조치하겠습니다.

그때 현명관은 비포 서비스라는 아이디어를 냈는데, 고객이 먼저 요구하는 서비스가 애프터 서비스(after service)라면, 고객이 요구하기 전에 먼저 제공하는 서비스가 비포 서비스(Before service)라고 하여서 바로 실행에 옮긴다.



현명관: 자, 모두 주목!

신라호텔 직원들:???



현명관: 지금부터 우리 호텔을 이용한 고객들 명단 쭉 외우세요. 그리고 자주 이용하시는 분들이 어떤 서비스를 받았는지 전부다 추려 내세요.

신라호텔 직원들: 네?????



현명관: 하세요.

이후 83년부터 신라호텔을 이용한 고객 정보를 수기로 분석해서 신라호텔만의 빅 데이터를 만들어내게 된다.

그리고 신라호텔의 서비스를 ‘요구하기 전에 고객 스스로를 알아주는 서비스’로 바꾸게 된다.

현명관: 아, 그리고 호텔 도어맨들.



도어맨: 네?

현명관: 지금부터 직접 고객들 차량번호와 차종을 모두 외우세요.

도어맨:?????네?



현명관: 차 사진만 딱 보고 김사장님 차는 몇 번, 이사장님 차는 몇 번, 이렇게 다 외우시라고요.



서비스를 위해서 현명관은 도어맨들에게 고객들의 차량번호 알아맞추기 대회를 해서 우승자에게는 상금을 줬다고 한다.

당시 신라호텔의 도어맨들은 기본적으로 1000개 이상의 고객들 차량 번호는 기본적으로 외우고 다녔다고 한다.

그리하여 1986년.

신라호텔은 미국의 금융,경제 월간지인 인스티튜셔널 인베스터지에서 선정한 국제 금융지 호텔 랭킹에서 한국에서 유일하게 순위권 안에 들게 된다.(36위)

 
이후 신라호텔은 각국의 세계 정상이 올때마다 숙소로 쓰이게 된다.

1983년 일본 나카소네 총리

1983년 요르단 후세인 국왕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85년 프랑스 로랑 파비우스 총리

1985년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

19987년 영국 앤 공주

이후 1988년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었을때, 현명관은 IOC위원들의 공동숙소를 신라호텔로 유치하기로 한다.

현명관: 여러분들 모두 모이세요.

신라호텔:?????

현명관: 88올림픽의 본부호텔로 결정되면 IOC위원들이 전부 와서 묵게됩니다.

그리고 다음 올림픽에 대한 총회도 합니다.

신라호텔: 네….

현명관: 스위스 로잔에 IOC 본부로 출장가세요. 거기서 본부호텔 섭외를 우리 신라호텔로 정하게 하는겁니다.



신라호텔:????????

현명관:하세요.

그렇게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본부호텔은 신라호텔이 유치하게 되었고, 다음 올림픽에 대한 조직회의도 신라호텔에서 이뤄지게 되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현명관이었지만, 신라호텔 재직 중에 흑역사를 하나 만들게 된다.

1987년 삼성은 초대 회장 이병철의 사망 이후, 이건희가 회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리고 신라호텔에 대해서 이건희는 한 가지 지시를 하게 되는데…




이건희: 이거봐 현 상무.

현명관: 예, 회장님.

이건희: 이제 말이야. 호텔의 특색이라 할수 있는 새로운 메뉴를 한 번 만들어 보는게 어떤가?

이건희의 오더로 현명관은 신라호텔의 신메뉴를 위해 후덕죽(중국 화교 셰프로 신라호텔 상무대우)과 신메뉴를 개발하게 된다.

그 이름은 바로 중국 요리중에 고급으로 통한다는 불도장.

현명관: 회장님, 어떻습니까?



이것이 불도장(佛跳牆)으로 직역하면 ‘부처님이 담을 넘는다.’라는 이름이다.

이 메뉴는 이건희에게도 극찬을 받은 맛이었고, 이제 홍보를 하게 되는데…



신라호텔: 아아, 수련하는 고승들도 그 냄새에 담벼락을 넘어 음식을 먹고 파계승이 되었다는 전설의 요리~ 불도장 한 번 드셔보세요~

조계종:???? 이게 머선 소리고????

수행하는 스님이 담을 넘고 음식을 먹어 파계승이 될 정도의 맛이라는 불도장의 홍보는 조계종의 엄청난 항의를 받게되고, 그로 인해 삼성그룹 자체에서 불교신문에 사과문을 올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또한 당사자인 현명관이 직접 조계종단을 방문해 공식 사과를 했다고 한다.

현명관: 하…..

그래도 불도장은 아직까지 신라호텔의 대표 메뉴로 팔리고 있다.

이후 이건희에게 찍혔는지 현명관은 매우 수난을 겪는다.

당시 신라호텔의 대표이사로 오른 현명관은 이건희의 호출을 받는다.

이건희: 현사장.

현명관: 네, 회장님.

이건희: 인사 이동이 있을거요. 당신은 앞으로 삼성시계 대표이사로 가시오.

현명관:……네?

당시 삼성은 시계 사업에도 손을 뻗었는데, 카파와 돌체라는 브랜드 명으로 일본 세이코와 제휴하여 손목시계 제조를 했었다.

하지만 삼성의 30개 계열사 중 30위라는 꼴찌 계열사에 적자투성이인 곳이라 사실상 좌천이라고 할 수 있는 인사 담당이었다.

이건희: 가시오.

현명관: 하…..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현명관은 1991년 삼성시계 대표이사로 좌천당한다.

지난이야기.

1978년 삼성에 입사한 현명관은 신라호텔에서 삼성 이병철 회장의 신임을 받아 대표이사까지 오르지만, 이후 이건희에게 삼성시계 대표이사로 좌천을 당하는데….

먼저 삼성시계는 과거 83년에 삼성이 시계 사업에 진출해서 만들어진 회사로, 자체 브랜드로 카파와 돌체라는 제품을 가졌고, 당시 조영구와 최진실이 광고모델로 쓰기도 했다.

하지만 삼성은 삼성이었고, 삼성시계는 계열사 매출 꼴지에 적자투성이면서도 당시 삼성의 심장인 태평로 본관에 집무실이 있었으며, 연봉 역시도 다른 계열사와 대등하여 인건비부터가 장난이 아닌 상황이었다.



현명관: 삼성시계 임원 여러분들 모이세요.

임원들: (새 사장님이군)네, 대표님!


현명관: 모든 일에는 주인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삼성시계는 그런게 없는것 같아요.

내 회사라도 이렇게 운영합니까? 몇년연속 꼴찌인데 그 연봉이 가당키나 해요?



임원들: 우리 역시도 삼성그룹의 공채로 들어왔고, 다른 계열사 임직원들과 동등한 관계인데요?

현명관: 이제부턴 아닐겁니다. 일단 방부터 빼겠습니다. 태평로에 있는 삼성시계 본사는 좀더 땅값이 싼 사무실을 구하기 위해 성남으로 이전합니다. 공장도 구미사업장에서 같이 성남으로 이전합니다.

다들 이삿짐 준비 하세요.

임원들:??????

현명관: 하세요.

그렇게 현명관은 삼성시계 대표이사에 취임하자마자 회사 내 비싼 임대료부터 줄이기 위해 태평로에서 방을 빼고, 구미사업장에서도 방을 빼서 성남에 통합 본사를 만들게 된다. 

또한 구조조정도 빡세게 단행한다.

임원들: 아니 대표님! 아무리 그래도 월급 삭감은 너무한 거 아닙니까?



현명관: 내 월급부터 먼저 본사에 깐다고 했고, 실제로 삭감했어요.

현명관은 신라호텔 부사장 시절에 받던 연봉보다 더 적은 금액만 받고 일하겠다고 자원해서 임원들 월급도 삭감한다.
그리고 권고사직을 받을때, 일반 사직보다 먼저 처리하면서 퇴직금+자발적 퇴직 프리미엄 퇴직금으로 웃돈을 얹어서 보낼사람은 보냈다.
하지만 임대료+인건비등의 군살빼기를 한다 해도 근본적으로 삼성시계의 적자는 나아지지 않았다.




원인은 바로 일본 세이코와의 제휴때문이었다.

삼성시계는 이건희때부터 세이코의 무브먼트를 수입하여 삼성시계 대표 밑에 일본인 부사장을 두어서 그들에게 배우라고 오더를 내렸다.

그러나 세이코와의 계약은 불공정한 것들이 많아서 아무리 돈을 벌어도 세이코쪽이 가져가는 비율이 많았다.

현명관: 회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건희: 하시오.



현명관: 아무리 생각해도 세이코와의 지금 계약은 손해가 큽니다. 누가 이런 호구딜….을 한지는 몰라도, 부품도 전부 세이코산이고 무브먼트도 라이센스비를 내고, 그렇게 조립해서 팔아도 돈은 전부 세이코가 법니다.

일단 이거부터 계약을 바꿔야 합니다.

임원들:??????????? 그거 이건희 회장님이 한 계약인데요?

현명관: 하….여기까지구나, 가슴속에 품었던 사표 꺼내자.

하지만 반전이 일어나는데.

이건희: 아 그래요? 그래서 나에게 직언한겁니까?

현명관: 네????

이건희: 그렇게 하시오.

이건희는 현명관의 제안을 쿨하게 받아들이고, 세이코와 결별을 선언한다.

그리고 삼성시계는 자체적으로 제품의 품질을 향상하는데 주력하는데, 여기서 위에 언급한 삼성시계 돌체 브랜드를 이용한다.

현명관: 삼성시계 임원들 모이세요.

임원들: 이번엔 또 뭡니까?????

현명관: 이제 우리 삼성시계에 대한 마케팅이 필요할때입니다. 9시 뉴스 시보광고 만드세요.

임원들:?????? 네?

현명관: 하세요.


시보광고란 뉴스 시작전에 [지금 XX에서 X시를 알려드립니다.] 라는 안내음과 함께 띵! 소리를 내는 그거다.

현명관은 방송국의 9시 뉴스 전에 저 시보광고를 모두 삼성이 따내게 만들고, 거기에 따라 [첨단 기술과 시계 예술의 만남~ 삼성시계가 9시를 알려드립니다.] 라는 슬로건으로 당시 평균시청률 20%대인 9시뉴스의 시청자들에게 삼성시계를 각인시킨다.

광고모델도 당시에 톱스타인 최진실과 이상우를 기용하였다.



참고로 삼성시계는 사라졌지만, 현명관의 시보광고는 지금도 삼성이 계속 이용한다.




현명관: 휴…이정도면 됐으려나?

현명관은 그리하여 다시 신라호텔로 복귀한다.

그리고 새로운 경영을 위해서 신라호텔 임원들과 지방에서 회의를 하는데… 이미 신라호텔에는 그전부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건희: 현 사장. 지금 어디요?

(이건희는 새벽 2시에 전화를 걸었다.)

현명관: 네, 회장님. 지금 신라호텔 미래사업을 위해 지방출장을 나와있습니다.

이건희: 당장 서울로 올라오시오.

현명관:?????? 네?

이건희: 오시오.

현명관: 하…….

어느날 뜬금없이 새벽 2시에 회장 호출이란 말에 현명관은 새벽에 서울에 있는 태평로 삼성 본관까지 차를 타고 간다.

그리고 오전 10시가 되서야 겨우 이건희를 만나게된다.

이건희: 현사장, 이게 대체 뭐요? 직원들을 왜 힐튼에 죄다 뺐겼어? 자네 인력관리를 어떻게 했는데 못버티고 나가는거야?

돈은 돈대로 처바르고, 왜 인재들은 죄 남의 호텔로 뺐기냔 말이야? 이거 어쩔꺼야?

이건희의 말대로 현명관이 신라호텔의 브랜드 가치를 올리자, 당시 대우그룹과 제휴하던 힐튼호텔과, 한화그룹과 제휴하는 프라자 호텔 등에서 수많은 신라호텔 출신들을 스카우트 해갔다. 그리고 현명관이 썼던 돈은 고스란히 마이너스가 되던 상황이었다. 

그걸 보고 받은 이건희는 격노해서 출장가 있는 현명관을 새벽부터 당장 올라오라고 부른것…

현명관: 하…..(죽쒀서 개준 꼴이었네.) 조치하겠습니다….

이건희: 무슨 조치? 이 자리에서 당장 말해보시오. 뭘 어떻게 조치하겠나?



현명관: 신라호텔 회사채 발행해서 주식 상장을 하겠습니다.


신라호텔:?????

이것은 현명관이 삼성시계로 발령받기 전 이건희와의 저 대담에서 했던 말로, 실제로 1991년 신라호텔은 ‘호텔신라’라는 브랜드로 상장하게 된다.

이건희: 현 사장.

어느날 이건희는 또 현명관을 호출한다.

현명관: 네 회장님.

이건희: 지금 당장 하는 일 멈추고 LA로 오시오.



현명관: ?????네?

이건희: 오시오.

1992년 이건희는 뜬금없이 호텔신라 대표이사인 현명관을 LA로 오라고 명령한다.

현명관: 하…..이번에는 또 뭐냐?